Media Log

사용자 삽입 이미지

내가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했던 것은 99년도 고등학교 3학년 때 였다.
98년도에 이미 많은 친구들이 피씨방을 찾고 있었지만, 그 때 나는 오직 당구만을 좋아했을 때였다.

고3, 수능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시절 몇 번 피씨방에 들락날락 하다보니 야자시간에 스타하러 가자는 친구들의 말이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너무나도 달콤하게 다가오던 그런 시절이었다.

친구들하고 피씨방에서 배틀넷으로 4:4를 하는 것도 너무 즐거웠지만, 2000년 가을 즈음 gamepds라는 구 충남대 프리베틀넷 서버를 알고 나서부터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좀 더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.

울랄라 서버라고도 불리던 구충남대 서버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곳 이었다. 시디키가 없었던 우리들은 정식배틀넷이 아니라 이 곳만을 찾았었는데, 3000명 정도만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서버 였지만 이 곳에서 사람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.
게임크래프트였던가? 스타크래프트를 런칭시켜주는 툴이 하나 있었는데, 그 때 나오는 음악소리는 지금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. -배경 음악으로 한 번 넣어봤다.
내 단짝 친구 하나와 둘이서 게임을 즐기곤 했는데, 어느 날 어떤 두명이 다가와 우리에게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. 아마 nogada 길드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다.

그 둘의 실력은 엄청났고,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깨닫게 되었다.

그 날 처음으로 길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. 아마 2001년 1월 3일 이었을 것이다.
내 친구 한명, 그리고 내 여자친구 한명. 3명이서 같이 만든 길드 이름은 Crazy길드.
당시 멋을 부린다고 ]CRazY[= 라는 prefix를 달았었고 -지금 다시보니 정말 촌스럽다. 내 아이디는 ]CRazY[=Tazo, 친구는 ]CRazY[=1004, 여자친구의 아이디는 ]CRazY[=Lover 였었다.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 아이디는 쭉 crazytazo이다. 아마 앞으로도 :)

아마도 여자친구 때문이었을 것이다.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여자는 많지 않았으니깐. 우리길드는 그 날부터 사람들이 엄청 많이 가입을 했다.
아직도 아이디가 기억나는 녀석들이 몇 명 있다.
]CRazY[=Arena
]CRazY[=sARaNg
]CRazY[=Zealot
]CRazY[=Random
]CRazY[=Protoss

]CRazY[=sARaNg 이라는 녀석이 우리의 에이스였는데, 이 녀석은 진짜배기였다.
나는 그렇게 스타를 잘하는 녀석을 당시에는 정말 처음 겪어 봤다.
또 이 녀석은 스타만 잘하는게 아니라 우리 길드의 홈페이지도 만들어 줬었는데, 아마 도메인이 crazyguild.com.ne.kr인가 그랬었던 것 같다.
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cgi를 사용한 간단한 게시판과 사진첩 등이 있었는데, 그 때는 너무 훌륭해보였다. -사실 그 때 나는 컴퓨터학과 1학년이었지만 150명 중 140등을 할 때 였고, 홈페이지 만드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게 느껴졌었다.

길드를 만들고 나서부터, 우리의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.
길드원들끼리 모여서 채널에서 대화 하다가 4:4나 3:3 게임을 하러 들어가곤 했는데, 그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좋았다.

또 다른 즐거움이 하나 있었는데, 그것은 바로 길드전.
당시 우리는 niceguy라는 길드하고 친하게 지냈었는데, 종종 길드전을 하곤 했다.
niceguy는 충남대 서버에서 핑클 길드와 함께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길드 중 하나였다.
[Niceguy]^King^
[Niceguy]biz
[Niceguy]milk
[Niceguy]kissme 등등 오프라인에서도 가끔 봤던 그리운 아이디들이 기억이 난다.

그 중 역시 최고는 [Niceguy]NaDa!!라는 아이디를 쓰던 지금은 아주 유명한 프로게이머가 된 이윤열이었는데, 핑클 길드의 LEEJIN 이라는 녀석과 함께 당시 충남대서버 최고수로 이미 유명했었다.

나이스가이들과 5:5 팀배틀을 처음 하던 날, 우리는 에이스인 사랑이가 1번으로 나가서 그 무서운 나이스가이들을 3명이나 잡아버렸다. 당시 우리는 신생길드라서 전적이 다들 200승 300승 할 때 였는데, 나이스가이들은 1000승이 안넘는 사람들이 없었다.
나이스가이 4번째 주자는 이윤열. 사랑이가 거의 다 잡은 경기를 이윤열의 무시무시한 저력으로 역전 당해 진 이후로 우리들은 남은 4명이 모두 허무하게 졌었던 것 같다.

그렇게 즐겁게 게임을 하며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. 오후 5시에 일어나 물 한잔 마시면서 담배 한대 피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스타크래프트를 하다가 새벽 5시 6시에 해가 떠오르고 다시 잠을 자는 생활의 반복.

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, 공부 하나도 안하고 놀았던 저 때가 이상하게도 후회 되지는 않는다.

그리고 나는 군대를 가게 되었고, 2003년 겨울 제대 했을 때에 이미 충남대서버는 사라져버리고 없었다.

나는 옛 생각을 하면서 가끔 WEST 서버에 들어가곤 했는데, 길드원 없이 혼자 스타크래프트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.

그 때 부터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. 나중에 스타크래프트2가 나오게 되면 옛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긴 하지만, 역시 저녀석들이 없다면 의미가 없을 것 같다.

지금은 다들 뭐하고 있을까. 가끔씩 그 때가 너무나 그립다.

'에세이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내 블로그의 방문자 경향을 확인하기  (8) 2008.10.05
집에 오는 길.  (7) 2008.05.10
화성행궁의 장용영 수위의식  (5) 2008.04.19
오랜만에 다시 찾은 야구장  (1) 2008.03.16
처음 마음가짐을 잊지마  (0) 2008.03.16